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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맛집

[230525] 족팡매야 @영등포구청 (중국집 "명성"의 폐업을 애도하며...)

by 하얀숲 2023. 5. 26.

우리 동네에 "명성"이라고 오래된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슬프게도 과거형)

보다시피 건물 자체가 오래되고 누추하고, 가게 안의 인테리어도 인테리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요즘 흔치않은 배달부도 두고 있어서 가끔 홀에 배달아저씨가 TV를 보고있기도 하고, 가게 밖에 짬통도 있는...

정말 오래됬지만 퇴근길에 슥 들러 저녁식사로 짜장면 한그릇 뚝딱 해결하고 들어가기 딱 좋은 그런 중국집이었다.

 

명성은 간짜장과 탕수육이 매우 훌륭했다.

짭쪼름한 캬라멜 맛이 나는 간짜장 소스는 면에 들이부어 섞으면 면에 촵 달라붙어 따로놀지 않았고,

탕수육 고기는 얼린고기가 아니어서 육질이 좋았으며 튀김옷은 딱딱한게 아니라 바삭바삭하며 폭신했다.

나는 보통 짜장에 고운 고춧가루를 살살 뿌려 먹는걸 워낙 좋아해서 그냥 짜장면을 즐겨 먹었었다.

내가 좋아하는 짜장은 국물이 좀 흥건하고 건더기가 잘게 다져진 그런 짜장을 좋아하는데

명성은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그런 짜장면을 내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러 명성에 꽤 자주 다녔었고, 주인은 우리를 알지만 아는척 하지 않는... 

단골되기 딱 좋은 가게 주인의 스탠스를 취했었지만, 주인 아저씨가 딱 한번 우리에게 말을 건 적이 있었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밀가루며 식용유며 가격이 미친듯이 올랐을 때 

갑자기 식용유 가격이 너무 올라 장사하기 힘들다며 하소연을 잠깐 하셨다.

물가가 오른만큼 명성 역시 식사 값은 조금씩 계속 올랐지만...

우리는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가격이 올랐네?" 하면서도 서서히 오르는 명성의 가격 올림은 참을만 했다.

 

올해 초.

회사의 바쁜 일이 끝나고 내가 칼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저녁 외식이 줄어든 시점에 한동안 (두달쯤?) 명성에 안갔다가 방문했는데

가게는 그대로인데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음식 맛도 바뀐 것이 주방장도 바뀐게 틀림없었다.

맛은 좀 달라졌지만 다행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짜장을 내오는 것은 여전했고,

볶음밥은 오히려 더 좋아졌으며

탕수육은 예전 명성의 탕수육에 비해 맛이 떨어졌다.

종종 탕수육을 포장해다 맥주랑 함께 드시던 남편님께선 탕수육 맛이 예전만 못한걸 몹시 아쉬워했지만

식사 메뉴는 우리가 만만하게 들락거리기엔 합격점을 받았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명성이 문을 닫고 가게 안을 다 때려부시기 시작하고 "내부 수리중" 이란 종이가 붙어있기를 근 한달...

 

만만하게 들락거릴 맛있는 중국집이 없어지면 어쩌지...? 

불안하다... 초조하다... 

 

드디어 가게가 간판을 올렸는데...

"족팡매야"

뭐지... 족발집인가? 중국집이라는데...?

쳐들어갔다.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하게 바뀌고...

단무지, 양파, 춘장, 간장 등은 셀프바로 바뀌어 있고, 테이블마다 주문용 태블릿이 설치되어 있다.

그냥 짜장이 없다. 간짜장도 없다. 가격이 명성 때보다 더 비싸졌다.

볶음밥도 그냥 볶음밥이 아니다. XO 볶음밥이란다.

난 짜장맛을 보는게 몹시 다급했기 때문에 이 집의 기본인 "올리브 유니 짜장면" 을 주문했고,

볶음밥을 맛보고는 싶었지만 해산물을 싫어하는 남편님은 새우가 잔뜩 들어간 사진의 XO볶음밥을 차마 주문하지 못하고 "차돌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했다.

 

오픈 기념인가... 서비스로 군만두를 내주셨다.

셀프바에서 떠온 고춧가루가 고운 고춧가루가 아니라서 조금 실망했다.

 

차돌 짜장면 곱빼기
올리브 유니 짜장

 

차돌이 듬뿍 올라간 차돌 짜장면.

다진 고기가 듬뿍 들어간 유니 짜장면.

짜장면 소스는 기본이 유니짜장이라 차돌 짜장면도 다진고기 범벅이다.

그리고 삶은 계란과 새싹 토핑으로 고급짐을 추구한다.

 

맛은...

이게 아쉬울 일인지,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는데 만두도, 짜장도 다 맛있었다.

맛만 따지면 분명 맛있고, 양도 많아서 흡족한데... 가격이 뭔 광화문, 강남 가격이다.

난 이렇게 비싸고 고급진 짜장면이 아니라

그냥 아무 토핑없고, 고기 좀 부족한 후줄근한 짜장면이어도 맛있고 적당한 가격의 짜장면이어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예전 더 저렴한 명성의 짜장면도 나를 충분히 행복하게 해줬는데...

 

맛이 "명성"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면 아웃시켜버리려고 벼르고 들어갔는데 

너무 깔끔한 인테리어도... (인테리어가 광화문, 강남 수준이다)

요즘 트렌드인 태블릿 오더도...

젊어 보이는 주방장님도...

신세대 느낌의 가게 이름도... (중국집 이름이 "명성"이나 "인화각" 이어야지!!! "족팡매야" 라니!!! 😡)

맛이 괜찮아서 버릴 수 없다. ㅅㅂ

 

족팡매야는 간짜장 메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방문에는 내가 볶음밥을 평가할 것이니 딱 맛있게 준비하라!!

 

맛있는 중국집이 집근처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마냥 좋지가 않다.

그냥 "명성"이 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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